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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장치

단일 보드 미니 컴퓨터, 터치 디스플레이, 모터, 나무, 프로세싱, 2019

건너편 대공분실 본관과 대조적으로 식당은 시선이 걸릴 곳 없이 통유리로 쾌적하게 트여 있었다.

식당은 아마 당시에도 이곳에서 벌어지던 야만과 상관없이 일상이 흘러가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식당에는 있는 힘을 다해 잠궈도 여전히 물이 떨어지는 낡은 파이프가 있었다.

 

잔혹한 야만의 시간에도 일상적이고 평범했을 이 공간에서 마주한 물의 누수는 오히려 반대편 본관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억압, 죽음으로서 물의 이미지를 강하게 상기시켰다. 또한 이 물은 평범한 일상성과 악이 분리되어 있어 작동하던 이질적인 두 세계를 하나로 이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누수되는 파이프 아래에 반복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기계 장치를 배치하였다. 이 장치는 떨어지는 물을 받아 증폭된 물의 소리를 발생시킨다. 이 장치는 가장 이질적인 두 공간을 악의 평범함 속으로 연결 짓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반복적 운동과 증폭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는 ‘악’을 사고하려는 순간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것은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 잠금해제, 2019, 민주인권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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